채권 가격과 듀레이션의 수학: 금리 민감도의 비밀

채권 가격과 듀레이션의 수학: 금리 민감도의 비밀

“채권 투자에서 수학을 이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금융시장에서 채권은 ‘안전자산’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안전’이라는 단어가 ‘가격 변동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채권 가격은 금리 변화에 따라 춤을 춘다. 그리고 이 춤의 폭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듀레이션’과 ‘컨벡서티’라는 수학적 개념이다.

채권의 현재가치: 미래 현금흐름의 합

채권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본질적으로 채권은 ‘미래에 받을 현금흐름’이다. 매년(또는 매 반기) 받는 이자와 만기에 돌려받는 원금, 이 모든 현금흐름을 현재 시점으로 할인한 가치의 합이 바로 채권 가격이다.

예를 들어 5년 만기, 액면가 1,000만 원, 연 3% 이자의 채권이 있다고 하자. 이 채권은 매년 30만 원의 이자를 주고, 5년 후 1,000만 원의 원금을 돌려준다. 시장 금리가 5%라면, 이 모든 현금흐름을 5%로 할인해 더한 값이 채권의 ‘공정가치’가 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채권 가격 = 30만 원/(1+0.05)¹ + 30만 원/(1+0.05)² + … + 1,030만 원/(1+0.05)⁵

계산해보면 약 914만 원. 즉, 액면가보다 86만 원 낮은 ‘할인채’가 된다. 시장 금리가 쿠폰보다 높기 때문이다.

만기, 이자율, 할인율: 가격 변동의 3대 요소

채권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째, 만기다. 만기가 길수록 미래 현금흐름이 더 많이 할인되므로, 금리 변화에 더 민감하다. 30년 만기 채권은 3년 만기 채권보다 같은 금리 변화에도 가격이 크게 움직인다.

둘째, **쿠폰(이자율)**이다. 쿠폰이 높을수록 투자자는 더 많은 현금을 일찍 회수한다. 따라서 쿠폰이 낮을수록 금리 변화에 더 민감하다. 극단적으로 이자가 없는 ‘무이표채(Zero-coupon bond)’는 가장 민감하다.

셋째, **시장 금리(할인율)**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 줄어들어 채권 가격이 하락한다. 반대로 금리가 내리면 가격이 상승한다. 이것이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비례한다’는 기본 원칙이다.

듀레이션: 금리 민감도를 측정하는 척도

채권의 금리 민감도를 측정하는 지표가 바로 ‘듀레이션’이다. 듀레이션은 단순히 ‘만기’가 아니라, 모든 현금흐름(이자와 원금)의 ‘가중평균 회수 기간’이다.

듀레이션은 두 가지로 나뉜다. **맥컬리 듀레이션(Macaulay Duration)**은 각 현금흐름의 현재가치 비중을 가중치로 한 평균 만기다. **수정 듀레이션(Modified Duration)**은 이를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률로 변환한 것이다.

수정 듀레이션이 5라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채권 가격은 약 5% 하락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금리가 1%포인트 내리면 가격은 약 5% 상승한다.

예를 들어, 10년 만기 국채의 듀레이션이 7이라면, 금리가 0.5%포인트 오를 때 가격은 약 3.5% 하락한다. 1억 원짜리 채권이 3.5% 하락하면 350만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듀레이션은 만기가 길고, 쿠폰이 낮을수록 커진다. 무이표채는 듀레이션이 만기와 같다. 반면 이자가 있는 채권은 듀레이션이 만기보다 항상 짧다.

컨벡서티: 듀레이션의 한계를 보완하는 개념

듀레이션은 금리와 가격의 관계를 ‘직선’으로 가정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곡선’ 관계다. 이 곡선의 휘어진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바로 ‘컨벡서티(Convexity)’다.

컨벡서티는 금리 변화에 따라 듀레이션 자체가 어떻게 변하는지, 즉 가격-금리 곡선의 ‘곡률’을 나타낸다. 물리학적으로 표현하면, 듀레이션이 ‘속도’라면 컨벡서티는 ‘가속도’다.

컨벡서티가 높을수록, 금리 하락 시 가격 상승폭이 더 커지고, 금리 상승 시 가격 하락폭은 더 작아진다. 즉, 컨벡서티는 금리 변동에 대한 ‘비대칭적 반응’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듀레이션이 같은 두 채권 A와 B가 있을 때, B의 컨벡서티가 더 높다면, 금리가 크게 변동할 때 B가 더 유리하다. 금리가 크게 내리면 B의 가격이 더 많이 오르고, 금리가 크게 오르면 B의 가격이 덜 떨어진다.

실전 활용: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예측

듀레이션과 컨벡서티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채권 투자에서 필수적인 도구다.

듀레이션만 사용한 가격 변화 예측:
ΔP ≈ -D × Δr × P
(D: 수정 듀레이션, Δr: 금리 변화폭, P: 현재 채권 가격)

컨벡서티까지 반영한 정밀 예측:
ΔP ≈ -D × Δr × P + ½ × C × (Δr)² × P
(C: 컨벡서티)

예를 들어, 듀레이션 8, 컨벡서티 50인 채권의 가격이 100일 때, 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ΔP ≈ -8 × 0.02 × 100 + ½ × 50 × (0.02)² × 100
≈ -16 + 1 = -15

즉, 가격은 약 15% 하락해 85가 된다. 듀레이션만으로 예측했다면 16% 하락할 것으로 봤을 테지만, 컨벡서티 효과로 하락폭이 1% 줄어든 것이다.

투자 전략에 듀레이션을 활용하라

듀레이션과 컨벡서티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투자 전략의 핵심이다.

금리 상승기에는 듀레이션이 짧은 채권(단기채, 변동금리채)이 유리하다. 반대로 금리 하락기에는 듀레이션이 긴 채권(장기채, 고정금리채)이 유리하다.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는 ‘듀레이션 매칭’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5년 후 자금이 필요하다면, 포트폴리오의 듀레이션을 5년으로 맞추는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금리가 어떻게 변해도 5년 후 목표 금액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듀레이션 갭’ 관리도 중요하다.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차이를 최소화하면 금리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는 보험사, 연기금 등 장기 부채를 가진 기관에 특히 중요하다.

마치며: 수학이 수익을 만든다

채권 투자에서 수학적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듀레이션과 컨벡서티라는 수학적 개념을 통해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을 예측하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금리 상승기에 장기채에 투자해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 금리 하락기에 단기채만 보유해 기회를 놓친 투자자들은 모두 이 수학적 개념을 간과한 결과다.

채권 시장에서 진정한 ‘안전’은 가격 변동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변동을 정확히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서 온다. 그리고 그 예측의 열쇠는 바로 듀레이션과 컨벡서티라는 수학적 도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