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읽는 당신의 신용: 믿음의 가격표 뒤 수학 이야기

숫자로 읽는 당신의 신용: 믿음의 가격표 뒤 수학 이야기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신용’의 순간과 마주합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거나, 대출을 신청하거나, 휴대폰을 개통할 때조차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신용 점수’ 혹은 ‘신용 등급’입니다. 마치 성적표처럼 매겨지는 이 숫자는 우리가 금융 거래에서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됩니다. 그런데 혹시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믿음’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숫자로 환산하는 걸까요? 여기에는 생각보다 정교하고 때로는 차가운 수학의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 칼럼에서는 돈을 빌려주고 받는 관계의 핵심, 신용 리스크(Credit Risk), 즉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을 금융회사가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하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수학적 원리와 모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 숫자 중심의 시스템이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 생각도 살짝 덧붙여 보겠습니다.

점수가 된 믿음: 신용등급과 스코어링의 수학 (Trust Turned into Points: The Math of Credit Ratings & Scoring)

은행이나 카드사가 돈을 빌려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떼이는 것’, 즉 빌려 간 사람이 약속대로 돈을 갚지 않는 **채무 불이행(Default)**입니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금융회사는 돈을 빌리려는 사람(차주)이 미래에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또 갚을 의향이 있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용 평가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개인 신용 점수(KCB, NICE 등에서 제공하는 1점~1000점 사이의 점수)나 기업/국가에 매겨지는 신용 등급(S&P, 무디스 등이 부여하는 AAA, BB+ 같은 등급)은 모두 이러한 평가 결과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점수나 등급이 심사자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과거 데이터를 분석하여 수학적, 통계적 패턴을 찾아낸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개인 신용 점수를 예로 들면, 주로 다음과 같은 정보들이 활용됩니다.

  • 상환 이력: 연체 없이 대출금, 카드값을 제때 갚았는지 (가장 중요!)
  • 부채 수준: 현재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소득 대비 부채 비율 등)
  • 신용 거래 기간: 얼마나 오랫동안 건전한 금융 거래를 해왔는지
  • 신용 형태: 어떤 종류의 금융 상품(대출, 카드, 보증 등)을 이용하고 있는지
  • 신용 조회 기록: 최근 단기간에 얼마나 많은 대출/카드 신청을 했는지

이러한 정보들과 과거 해당 정보를 가진 사람들의 실제 채무 불이행 여부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어떤 요소가 부도 위험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지, 그리고 그 영향력(가중치)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신용 평가의 수학적 핵심입니다.

여기서 제 생각을 잠시 덧붙이자면, 데이터 기반 평가는 객관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고 각 항목에 얼마의 가중치를 둘지는 결국 시스템을 설계하는 인간(또는 사회)의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초년생이나 주부처럼 금융 거래 이력이 부족한 사람(Thin Filer)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평가 기준의 투명성을 높이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지속적인 고민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지금의 신용 점수가 그 사람의 ‘진짜’ 신용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을까요? 숫자에 가려진 이야기는 없을까요?

‘네’ 또는 ‘아니오’ 확률 게임: 로지스틱 회귀와 스코어링 (A ‘Yes’ or ‘No’ Probability Game: Logistic Regression & Scoring)

그렇다면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 사람이 앞으로 1년 안에 돈을 갚지 못할 확률은 얼마일까?”를 예측하는 구체적인 수학 모델은 무엇일까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널리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로지스틱 회귀(Logistic Regression) 분석입니다.

로지스틱 회귀는 결과가 ‘예’ 또는 ‘아니오’와 같이 두 가지 범주로 나뉘는 경우(예: 부도 발생 / 부도 미발생, 대출 승인 / 대출 거절)에 특정 요인들이 그 결과 발생 확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는 통계 기법입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나이,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등을 보고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을 예측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금융회사는 신청자의 소득, 부채, 연체 기록, 직업 등의 정보를 입력값(X_1,X_2,…)으로 사용하여, 이 사람이 부도할 확률(P(textDefault))을 로지스틱 회귀 모델을 통해 추정합니다. 이 모델은 각 입력 변수에 가중치(beta_1,beta_2,…)를 부여하여 확률값을 계산해냅니다. (수학적으로는 P(textDefault)=frac11+e−(beta_0+beta_1X_1+beta_2X_2+…) 와 같은 S자 형태의 함수를 사용합니다.)

신용 스코어링 모델은 바로 이 로지스틱 회귀나 의사결정나무(Decision Tree), 혹은 최근에는 머신러닝/AI 알고리즘 등을 활용하여 구축됩니다. 과거 수많은 고객 데이터를 학습하여,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이 부도할 확률이 높은지를 파악하고 각 특성에 점수를 부여하는 규칙(Rule)을 만듭니다. 새로운 대출 신청자가 나타나면, 그의 정보를 이 규칙에 넣어 계산된 부도 확률을 다시 보기 쉬운 ‘신용 점수’로 변환하여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 한 번 제 생각을 보태자면, 이 모델들은 과거의 패턴을 학습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과거에 성실했던 사람이 미래에도 성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합리적인 가정이지만, 맹신은 금물입니다. 사람은 변하고 상황도 변합니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질병 등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모델이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인공지능(AI) 기반의 스코어링 모델이 확산되면서 예측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그 판단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블랙박스’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금융 소외를 심화시키거나 불공정한 차별을 야기하지 않도록 윤리적인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회사의 운명과 주가: 확률적 부도 모델 (Merton 모델) (Company Fate & Stock Price: Stochastic Default Models – Merton Model)

개인 신용 평가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기업의 부도 위험을 예측하는 이론적인 모델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머튼 모델(Merton Model)**입니다. 이 모델은 1974년 로버트 머튼(앞서 블랙-숄즈 모델로 노벨상을 받은 그분입니다!)이 제시한 것으로, 기업의 부도 가능성을 옵션 가격 결정 이론을 이용하여 설명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머튼 모델은 회사의 자기자본(주식 가치, V_E)을 회사의 총자산(V_A)을 기초자산으로 하고, 부채(D)를 행사가격으로 하는 콜 옵션과 같다고 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 회사의 자산 가치(V_A)는 주가처럼 시간에 따라 변동합니다.
  • 회사는 만기(T)에 갚아야 할 빚(D)이 있습니다.
  • 만약 만기 시점 T에 자산 가치 V_A가 빚 D보다 크다면, 주주들은 빚 D를 갚고 남은 자산(V_A−D)을 갖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주 몫인 자기자본 V_E가 됩니다. 즉, 주주들은 ‘자산을 부채 가격에 살 수 있는 콜 옵션’을 행사한 셈입니다.
  • 만약 만기 시점 T에 자산 가치 V_A가 빚 D보다 작다면, 주주들은 빚을 갚지 않고 회사를 포기합니다 (주식회사의 유한 책임). 이때 회사는 부도 처리되고, 채권자들이 남은 자산 V_A를 가져갑니다. 주주 몫 V_E는 0이 됩니다. 즉, 주주들은 콜 옵션 행사를 포기한 것입니다.

결국, 회사의 부도는 만기 시 자산 가치가 부채 가치보다 낮을 때 발생합니다 ($V\_A \< D$). 머튼 모델은 블랙-숄즈 옵션 가격 공식을 응용하여, 현재 회사의 자산 가치, 자산 가치의 변동성, 부채 수준, 만기까지의 시간 등을 바탕으로 이러한 부도 사건이 발생할 **확률(P(textDefault))**을 계산합니다.

제 생각에, 머튼 모델은 기업의 부도 위험을 주식 시장 정보(주가 변동성 등)와 연결시킨 매우 우아하고 통찰력 있는 이론입니다. 회사의 주식 가치가 사실상 그 회사 자산에 대한 콜 옵션과 같다는 시각은 금융 시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다만, 실제 기업의 자산 가치 변동이 모델의 가정처럼 이상적인 확률 과정을 따르지 않거나, 부채 구조가 복잡한 경우에는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한계도 명확합니다. 이론적 아름다움과 현실 적용의 간극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행의 위험 저울질: 신용 리스크 측정 방식 (The Bank’s Risk Balancing Act: How Credit Risk is Measured)

그렇다면 개인 고객부터 대기업까지 수많은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은 전체 포트폴리오의 신용 리스크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할까요? 은행은 단순히 개별 차주의 부도 확률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리스크를 계량화합니다. (이는 바젤 협약 등 국제적인 은행 건전성 규제 기준과도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1. 부도 확률 (PD, Probability of Default): 특정 기간(보통 1년) 내에 차주가 부도할 확률. 앞서 설명한 신용 스코어링 모델, 재무 분석, 머튼 모델 등을 통해 추정합니다.
  2. 부도 시 손실률 (LGD, Loss Given Default): 차주가 부도했을 때, 담보 회수 등을 거치고도 은행이 최종적으로 입게 되는 손실의 비율 (예: 1억 빌려줬는데 6천만원만 회수했다면 LGD는 40%).
  3. 부도 시 익스포저 (EAD, Exposure at Default): 차주가 부도하는 시점에 은행이 해당 차주에게 노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총 채권 금액 (예: 마이너스 통장의 경우, 현재 사용액이 아니라 부도 시점의 최대 예상 사용액).

은행은 이 세 가지 요소를 곱하여 **예상 손실 (EL, Expected Loss)**을 계산합니다.

EL=PDtimesLGDtimesEAD

이 예상 손실은 은행 입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데 발생하는 일종의 ‘예상되는 비용’으로 간주하고, 미리 충당금(대손충당금)을 쌓아 대비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예상치 못한 손실, 즉 **예상외 손실 (UL, Unexpected Loss)**입니다.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실제 부도율이나 손실률이 예상보다 훨씬 높아지는 경우죠. 은행은 이러한 예상치 못한 충격에도 망하지 않고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UL에 대비한 **자기자본(Capital)**을 충분히 보유해야 합니다. 이 자기자본 규모를 결정하기 위해 은행들은 CreditMetrics, KMV 등 복잡한 포트폴리오 신용 리스크 모델을 사용하여 전체 대출 포트폴리오의 잠재적 손실 분포를 통계적으로 분석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의견을 덧붙이자면, 이러한 정교한 리스크 측정 및 관리 시스템은 개별 은행의 건전성을 높이고 금융 시스템 전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리스크 관리 규제가 더욱 강화된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모델은 어디까지나 과거 데이터와 특정 가정에 기반한 도구일 뿐, 미래의 모든 위험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꼬리 위험(Tail Risk)’은 표준적인 통계 모델로 포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델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고, 정량적 분석과 더불어 시장 상황 변화에 대한 통찰력, 위기 시나리오 분석(스트레스 테스트), 그리고 건전한 경영 판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숫자는 중요하지만, 숫자가 전부는 아닙니다.

마무리하며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신용카드 한 장, 대출 한 건 뒤에는 이처럼 복잡한 수학과 통계, 그리고 확률의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신용 리스크를 측정하고 관리하려는 노력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개인의 삶에 ‘점수’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수학은 신용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측정하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했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신용 평가 방식은 더욱 정교해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투명성, 공정성, 그리고 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숫자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숫자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